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EN]: Chapter 146

무공 쓰는 외과 의사 146화

제27장 스승(1)

점심시간 즈음의 지하철 1호선 승강장은 비교적 한산했다.

사람들이 붐비지도 않았고, 줄이 길게 늘어서 있지도 않았다.

준후는 승강장 지붕 너머의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열흘 만이었다.

하늘이 높고 푸르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온몸으로 느끼는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레지던트 생활은 그만큼 여유가 없었다.

준후는 목이 뻐근할 때까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볼 수 있을 때 실컷 봐둘 작정이었다.

충분히 감상을 마치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스크린 도어에 준후의 모습이 비쳤다. 수술복과 의사 가운을 입지 않은 모습이 어색했다.

이제는 뼛속까지 의사가 된 듯했다.

점심 생각은 없었다.

준후는 조금 걸어서 가까운 자판기로 이동했다.

자판기 커피를 한 모금씩 음미했다.

‘희한한 사람이네. 코스프레라도 하고 있는 건가?’

준후는 지하철 칸으로부터 5칸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체격이 좋은 그는 검은 망토를 걸쳤고, 역병 의사 가면을 쓰고 있었다.

부리가 툭 튀어나온, 새 부리 형상을 한 가면이었다.

복장이 괴상하고 독특한 탓에 남자 근처에는 사람이 없었다.

“…….”

“…….”

가면 쓴 남자가 고개를 돌려 준후를 쳐다보았고, 준후는 남자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남자의 눈을 볼 수 없어 아쉽다고 준후는 생각했다.

지하철이 도착하면서 짧고도 기이했던 조우는 끝났다.

지하철에 탑승한 준후는 하염없이 차창 밖을 응시했다.

두 번째 약속 장소에서 만날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사람’이라면 분명 자신의 날개가 되어줄 거라고 준후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하철의 평화로운 분위기가 깨지는 조짐이 보였다.

우르르르.

지하철 칸막이가 열리면서 왼쪽 칸에 있던 사람들이 준후가 있는 칸으로 달려왔다.

꼭 괴물에 쫓기는 것처럼.

“꺄아아악!”

“도망쳐요! 저쪽 칸에 미친놈이 있어요!”

“칼… 칼부림이 났어요! 다들 도망치세요!”

넘어온 사람들이 지르는 비명에 지하철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불안이 전염되면서 사람들은 허둥지둥 다음 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전쟁이 일어나 피난을 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짚이는 바가 있었던 준후는 사람들이 건너온 칸으로 이동했다.

사람들의 행렬을 거스른 것이다.

이에 중후한 외모의 중년 남성이 준후의 팔을 잡으며 만류했다.

“방금 이야기 못 들었어요? 대피하라고요! 저쪽 칸에 미친놈이 있다니까요.”

“미친놈이 있으면 빨리 제압해야죠.”

“칼 들고 있는 사람을 무슨 수로 제압해요? 경찰하고 119에 신고했으니까 빨리 대피하세요.”

“혹시 자세한 상황을 아십니까?”

“지금 그게 중요해요?”

“네. 중요합니다.”

“허 참… 미치고 팔짝 뛰겠네.”

중년 남자는 답답해하면서도 짧게 설명을 해주었다.

아까 준후가 눈여겨봤던 남자, 즉 역병 의사 코스프레를 한 남자가 갑자기 같은 칸에 있던 승객을 칼로 찔렀다는 것이다.

“완전 미친놈이에요. 언제 여기까지 올 줄 모른다고요.”

“말씀 감사합니다. 빨리 가시던 길 가세요.”

준후는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을 헤쳐나가기 시작했다.

흉기를 든 미친놈이 있고, 그놈에게 상해를 입은 사람이 있다면 더욱더 현장에 가봐야 했다.

이 끔찍한 상황을 수습할 사람은 준후뿐이었다.

서둘러 도착한 현장.

역병 의사 남자는 좌석에 앉은 채 피 묻은 정글도를 허공에 휘두르고 있었다.

한편 칼에 찔린 남자는 직장인으로 보였는데, 출입구 쪽에 大자로 쓰러져 있었다.

붉게 물들어가는 하얀 셔츠.

얼핏 봐도 상태가 심각했다.

“넌 뭐야? 죽고 싶어서 제 발로 왔어?”

역병 의사 남자가 좌석에서 일어나 준후를 마주 보고 섰다.

“나는 세상이라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강림한 역병 의사다. 보아하니 너도 치료가 필요한 모양이군.”

남자는 복장뿐만이 아니라 말투까지 제정신이 아니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파바바밧!

준후는 한 줄기 바람처럼 빠르게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남자가 화들짝 놀라 정글도를 휘두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일반인이 준후의 움직임에 반응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턱!

준후는 손날로 남자의 손목을 내리쳤다.

“아아아악!”

남자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정글도를 떨어뜨렸다.

둔탁한 쇳소리가 지하철 칸에 울려 퍼졌다.

퍽!

준후가 남자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남자의 허리가 새우처럼 휘었다.

퍽!

준후가 주먹으로 남자의 턱을 올려쳤다.

남자의 허리가 좀 전과는 반대 방향으로 휘었다.

“질병은 너다, 머저리 같은 놈아.”

준후는 남자의 가슴에 청운신장[무협소설에 등장하는 강력한 장법]을 박아 넣었다.

퍼어어억!

쿵!

남자가 공중에 붕 떴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는지 미동도 없었다.

손속을 조절했으니 큰 부상은 입지 않았을 것이다.

운이 좋은 줄 알아라.

무림에서 마주쳤으면 넌 내 손에 목숨을 잃었어.

미치광이를 처리했음에도 준후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준후는 다급하게 쓰러진 환자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 * *

“으으… 너무 아프고 너무 추워요. 숨도 잘… 못 쉬겠어요.”

환자는 희미하게나마 의식이 있었다.

극심한 추위와 고통,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갑작스러운 칼부림에 얼마나 고통스럽고 놀랐을까.

“저는 대학병원 의사입니다. 힘드시겠지만 구급대원이 올 때까지 저와 함께 버텨보시죠.”

“…….”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세요.”

말을 하면서 준후는 남자의 셔츠를 힘으로 찢었다.

찌이이익!

‘생각보다 심각하잖아.’

준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환자의 LUQ(Left Upper Quadrant, 복부 좌상부)[복부를 4등분했을 때 왼쪽 윗부분] 중심에 깊은 자상(찔린 상처)이 있었다.

벌어진 피부 틈 사이로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자상은 환자의 가슴에도 있었다.

하지만 복부 자상만큼 깊지는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병원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응급처치를 할 수는 없었지만, 준후에게는 강력한 필살기가 있었다.

바로 점혈법이었다.

준후는 우선 복부 자상의 위치부터 가늠했다.

해부학적으로 접근하면 간 부근인 것 같은데.

더 정확하게 보면 좌측 간정맥 부근인가?

팟!

준후는 내공을 담은 손가락으로 환자의 간정맥 부근을 지그시 눌렀다.

좁쌀만 한 크기로 형상화한 내공이 손가락에서 복부로, 복부에서 복강으로, 복강에서 다시 간정맥을 향해 나아갔다.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한 내공이 찢어진 혈관을 단단하게 틀어막아 버렸다.

내공을 통해 준후는 혈류 속도가 훨씬 느려졌음을 느꼈다.

‘됐어. 이 정도면 최소 30분은 버틸 수 있어.’

준후는 환자의 찢어진 셔츠로 환자의 복부 상처를 칭칭 감았다.

핵심적인 처치를 1분 만에 끝낸 것이다.

이제 좀 안심하려는 찰나,

환자의 얼굴이 갑자기 새파랗게 질려갔다.

“가… 가슴이 아파요. 숨도… 못 쉬겠어요.”

환자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마치 바람 빠진 풍선 같았다.

환자의 눈빛 또한 점점 흐릿하게 변해갔다.

‘간 출혈은 비교적 빨리 잘 해결한 것 같은데, 왜 이러지?’

‘설마…?’

준후는 얼굴을 찌푸리며 환자의 오른쪽 흉부 자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상처가 깊지 않아서 안심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환자가 극심한 흉통과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외상성 기흉까지 발병한 모양이었다.

외상성 기흉[Traumatic pneumothorax].

외상으로 폐에 구멍이 생기고, 그 자리에 공기나 혈액, 가스 등이 고이는 질환이었다.

흉부외과에서 분초를 다투는 응급 질환이기도 했다.

적절한 응급처치가 없으면 환자는 한쪽 폐가 찌그러지면서 목숨을 잃게 된다.

응급처치라면 폐에 고여 있는 공기를 빼주는 흉강천자[thoracentesis]인데….

어디 날카로운 물건이 없나?

준후는 다급하게 주변을 살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물건은 피 묻은 정글도였다.

하지만 당연히 흉강천자에 정글도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힘 조절을 잘한다고 해도 칼날 면적이 너무 넓었다.

정글도를 사용하는 것은 사용하지 않는 것만 못해 보였다.

승객들이 사라지고 텅 빈 객실 안.

준후는 애타게 뾰족한 물건을 찾았지만,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없었다.

스카프나 귀마개 따위만 간간이 보일 뿐이었다.

“끄르르륵.”

급기야 환자의 입에서 괴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기흉이 환자의 생명을 앗아가는 소리였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가방에 볼펜이라도 하나 넣어두는 건데.’

상황이 분초를 다투자 준후는 심지어 없는 볼펜마저 아쉬워했다.

볼펜이라도 있었다면 반으로 쪼개서 흉강에 고인 공기를 빼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정글도를 써야 하나?’

‘안 돼. 그랬다간 혈관하고 신경까지 베어버려. 상처도 더 벌어질 거야.’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잖아? 이대로 환자가 죽어가는 걸 보고만 있으라고?’

‘최소한 네 손으로 환자를 죽이는 것보단 낫지.’

정글도의 사용 여부를 두고 의견이 다른 두 자아가 치열하게 다투었다.

그 와중에도 환자의 상태는 계속 나빠지고 있었으니, 이제 환자는 얼마 남지 않았던 의식마저 잃어가고 있었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

‘어쩔 수 없어. 할 수 있는 건 뭐라도 해봐야지.’

준후는 입술을 깨물고 환자의 곁에서 일어섰다.

정글도 쪽으로 향했다.

죽어가는 환자를 무력하게 지켜보는 것을 준후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애초에 그 무력함을 벗어나기 위해 외과 의사라는 길을 택하기도 했고.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준후의 눈에 귀신같이 포착된 물건이 있었으니, 바로 테이크 아웃 플라스틱 잔과 빨대였다.

대피하던 사람이 두고 간 모양이었다.

준후는 컵에서 빨대만 뽑아서 손에 쥐었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묘수.

빨대에 내공을 불어넣은 후, 준후는 빨대로 자신의 손바닥을 가볍게 두드려보았다.

툭. 툭. 툭.

손바닥에 닿는 빨대의 감촉이 철근처럼 단단했다.

내공으로 인한 강화 효과 덕분이었다.

감염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보다는 기흉부터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감염은 몇 시간 뒤의 일이었고, 기흉은 당장 초를 다투는 일이었기에.

준후는 환자 곁으로 돌아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천자를 해야 할 부위를 노려보며 빨대에 흘려보내는 내공을 일정하게 유지했다.

지금까지는 무기가 없어서 두려웠을 뿐, 무기를 갖춘 준후는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준후의 눈빛도 어느새 차분함을 되찾았다.

푹!

준후 손에 들린 빨대가 환자의 오른쪽 7번 갈비뼈 사이를 파고들었다.

* * *

노량진역.

무장한 경찰 6명과 구급대원 3명이 초조하게 지하철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0분 전, 지하철에서 칼부림이 벌어졌다는 신고를 받고 긴급하게 출동한 것이다.

지하철을 기다리던 승객들을 미리 대피시키고 통제한 덕분에 승강장은 텅 비어 있었다.

“하… 세상이 정말 험악해지긴 했나 보네. 대낮에 지하철에서 칼부림이라니.”

김 경감이 테이저건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다친 사람도 있다는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정 순경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따로 연락 온 건 없어? 시민이 더 다쳤다거나.”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승객들도 무서워서 그 미친놈이 있는 칸에 갈 엄두를 못 내는 것 같습니다.”

“나라도 그러겠다.”

마침 지하철이 역사로 들어서면서 승강장의 분위기가 팽팽하게 돌변했다.

경찰과 구급대원 모두 잔뜩 긴장한 얼굴로 지하철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위이이잉.

드디어 열린 지하철 문.

승객 없는 지하철은 왠지 모르게 을씨년스러웠다.

“정 순경이랑 이 순경은 승객들 모여 있는 칸을 보호하고, 나머지는 전부 나를 따라와.”

“…….”

“구급대원분들은 조심해서 저희 뒤를 따르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일행은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 조종실 쪽으로 이동했다.

“어? 뭐지?”

드디어 문제의 칸에 도착했을 때, 김 경감은 어이없는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잔뜩 긴장했던 것과는 달리 상황은 이미 종료되어 있었다.

칼부림을 벌였던 남자는 대자로 뻗어 있었고, 환자로 보이는 승객은 좌석에 앉아 있었으며, 그 곁을 잘생긴 청년이 지키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김 경감이 청년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