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rgeon Who Uses Martial Arts [EN]: Chapter 50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504화

제98장 도전자(5)

지구대 조사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삼각 구도가 형성되어 있었다.

책상 앞에 경장 정석규가 앉아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규홍과 준후가 각각 자리 잡고 있었다.

흉기 난동을 부린 규홍은 수갑을 찬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반면 준후는 어깨를 편 채 당당하게 정석규를 바라보고 있었다.

‘외과의사라서 배짱도 좋은 건가?’

정석규는 준후의 당당한 태도에 속으로 감탄했다.

사인회장에서 칼부림을 당하고 흉기에 찔린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준후는 침착해 보였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금 이 상황만 놓고 보면.

마치 준후가 뻔뻔한 가해자고, 규홍이 불쌍한 희생자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선생님. 병원은 다녀오셨죠?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정석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다치긴 했지만 심각한 부상은 아닙니다.”

준후가 셔츠를 걷어 올렸다.

복부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옆구리에 핏자국이 있는 걸 보니, 회칼이 옆구리를 스친 듯했다.

붕대는 준후의 왼쪽 옆구리에도 감겨 있었다.

“정말 다행입니다.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너무 위험했습니다. 흉기를 든 사람을 혼자서, 그것도 직접 상대하시다니.”

“피를 봐서 그런지, 그때는 저도 모르게 흥분했습니다.”

준후가 멋쩍게 웃었다.

사실 정석규가 서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된 후였다.

준후가 규홍을 완벽하게 제압하여 바닥에 눕혔고, 회칼까지 빼앗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준후는 홍길동처럼 재빠르게 회칼을 피하며, 규홍의 손목을 순식간에 가격했다고 한다.

고통스러워하는 규홍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후.

양팔로 규홍의 양쪽 어깨를 꺾어 제압했다고 했다.

그 모습이 마치 영화 속 무술 고수를 보는 듯했다고…….

“다음부터는 조심하십시오. 항상 오늘처럼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명심하겠습니다.”

“박규홍 씨.”

“예.”

“본인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습니까?”

정석규가 규홍을 매섭게 노려보며 물었다. 그의 눈빛은 강렬하게 타올랐다.

예전 같았으면 당장이라도 뒤통수를 후려치고 욕설을 퍼부으며 규홍을 다그쳤을 것이다.

규홍은 그 정도로 괘씸한 놈이었다.

“사람들 많은 곳에서 회칼로 사람을 찌르려 하다니, 제정신입니까? 짐승도 그런 짓은 안 할 겁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규홍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고개를 깊이 숙여 표정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꽤나 침울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었다.

왜냐고?

정말로 반성할 줄 아는 인간이라면, 애초에 이런 끔찍한 일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테니까.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규홍이 갑자기 준후 쪽으로 몸을 돌렸다.

허리를 연신 굽혔다 펴며 사죄했다.

마치 오뚝이 인형처럼.

“뭐가 그렇게 죄송하죠?”

준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공무원 시험에 계속 떨어지면서 좌절했고, 세상을 원망했습니다.”

“그래서요?”

“그런 감정을 어디에도 쏟아낼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선생님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선생님이 너무나 부럽고 질투가 났습니다.”

규홍이 아까와는 달리 고개를 살짝 들었다.

눈시울이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촉촉했다.

어깨는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고.

목소리에는 울먹임이 가득했다.

“하는 일마다 죄다 꼬이니까, 제 마음이 고장 났었나 봅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

“저는 이전까지 죄를 저지른 적도 없습니다. 앞으로는 착하게만 살겠습니다. 이번 한 번만, 큰 실수지만, 선생님께서 용서해주실 수는 없을까요?”

규홍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눈물이 청바지를 적셨다.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조사실 안에 울려 퍼졌다.

애절한 호소가 끝난 후.

세 사람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타다다닥.

정석규가 키보드를 두드리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의외로 전과 기록은 없긴 하네. 그렇다고 해서 당신 죄가 용서되는 건 아니야.”

정석규가 단호하게 말했다.

피해자의 눈물이 아닌 가해자의 눈물은, 그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짜내는 가식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벌을 피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선생님께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

“제가 왜 이렇게 삐뚤어졌는지, 그 이유를 알려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저…… 그것뿐입니다.”

규홍이 준후를 슬쩍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준후의 표정은 무거웠다.

규홍을 증오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저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듯했다.

아무래도 그의 감정에 호소하는 작전이 통하는 것 같았다.

‘반성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형량만 줄일 수 있다면.’

규홍은 준후에 대해 나름대로 깊이 파악하고 있었다.

계획을 실행하기 전.

준후에 대한 기사를 하나도 빠짐없이 꼼꼼하게 읽어봤기 때문이다.

규홍이 보기에 준후는 인정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해가 될 정도의 사람이었다.

사비를 들여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을 도왔으며, 응급 상황에서도 환자를 포기하지 않고 치료에 전념했다.

박애주의자.

인본주의자.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극소수의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준후였다.

그렇다면.

적당히 감정적인 부분만 건드려줘도 형량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언론의 뭇매를 맞고 주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겠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어차피 1년만 지나도 사람들은 규홍을 완전히 잊어버릴 테니까.

“선생님.”

준후가 정석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과연 준후는 어떤 판단을 내릴까.

정석규와 규홍은 긴장하며 준후를 쳐다보았다.

순간 조사실 안의 공기가 팽팽하게 조여드는 듯했다.

벽시계 초침이 똑, 똑, 움직이는 소리마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들려왔다.

“규홍 씨의 처벌 수위는 어떻게 됩니까?”

“글쎄요. 자세한 건 좀 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아마 특수 상해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특수 상해로는 안 됩니다.”

준후의 대답은 단호했다.

‘역시, 계획대로 흘러가는군.’ 규홍은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감추려 했다.

하지만.

역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했다.

뒤이어 나오는 말들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살인 미수로 기소해야 합니다.”

“사…… 살인 미수요?”

규홍은 물론, 정석규까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이 자리에서 태연한 사람은 준후 혼자뿐이었다.

“커터칼도 아니고, 회칼을 미리 준비해서 저를 습격했습니다. 이건 명백한 고의성이 있는 범죄입니다.”

“그건 맞는 말입니다만.”

“주변 사람들이 습격 당시의 영상을 촬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준후가 말을 이었다.

“영상을 보면 이 친구가 회칼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위협용으로 휘두른 게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저를 죽일 생각으로 급소를 노렸습니다.”

“아니에요, 선생님! 그건 오해입니다!”

규홍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가 써놓은 시나리오가 완전히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법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특수 상해와 살인 미수가 주는 무게감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살인 미수로 처벌을 받는다면, 규홍의 미래는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정말로 죽일 생각이었다면, 선생님이 그렇게 가볍게 다치셨을 리가 없잖아요!”

“네놈은 내 급소를 노렸어. 내가 요령껏 피했을 뿐이지. 영상을 보면 다 드러날 텐데, 혓바닥으로 진실을 가릴 수 있을 것 같으냐?”

준후가 규홍을 비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규홍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규홍은 속으로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물렁한 인간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내가 서준후라는 인간을 완전히 잘못 파악하고 있었던 건가.’

“역겨우니까, 어설픈 연기는 집어치워. 애송아.”

준후가 규홍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규홍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불길한 예감에, 다리가 덜덜 떨려왔다.

“저는 할 말이 끝났습니다. 합의는 절대 없을 겁니다. 처벌과 형량을 최대한 무겁게 내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준후는 그대로 조사실을 나섰다.

* * *

“조사는 잘 받으셨습니까?”

“네. 제가 뭐 더 할 일이 있겠습니까.”

지구대 앞에 놓인 커피 자판기 앞에서, 준후는 성광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광현은 병원에서부터 지구대까지 준후와 계속 동행해 주었다.

“선생님. 괜찮으시다면 담배 한 대 피우겠습니다. 곤란한 일을 당한 건 선생님인데, 어째서인지 제가 더 안절부절못하게 되는군요.”

“그러시죠.”

준후의 허락이 떨어지자, 성광현은 곧바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하얀 연기가 바람을 타고 하늘로 흩어졌다.

현재 시각은 오후 4시.

사인회는 2시간 정도 진행되었고, 병원과 지구대를 오가는 데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뭔가 일이 술술 풀리는 것 같습니다? 올해는 운이 좋으려나 봅니다.”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흉기 난동에 휘말리셨는데, 일이 잘 풀리다니요?”

성광현이 기겁하며 되물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담배 연기를 잘못 들이마셔 켁켁거리는 기침까지 했다.

“흉기 난동보다 더 확실한 책 홍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당분간 뉴스에는 저희 이야기만 나오겠네요.”

“지금 홍보 이야기를 하실 때가 아닙니다! 죽을 뻔하셨잖습니까!”

준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인간 대 인간으로 맞붙었을 때, 준후를 쓰러뜨릴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설령 상대가 총이나 칼을 들고 덤벼든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준후는 이미 과거에 시호의 샷건을 코앞에서 피했던 전적이 있지 않은가.

규홍이 휘두른 회칼에 상처를 입은 건, 당연히 계획의 일부였다.

조화경의 경지에 오른 고수가, 삼류 무사도 되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의 칼에 베일 리가 없었다.

준후가 일부러 상처를 입은 이유는…….

규홍의 형량을 최대한으로 늘리기 위해서였다.

규홍이 준후에게 동정심을 유발하려 했지만, 그런 어설픈 작전이 통할 리 없었다.

준후는 정파 무인 중에서도 처벌에 있어서는 매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사람이었다.

회개나 갱생 따위는 애초부터 믿지도 않았다.

“안 죽었으면 된 거 아닙니까.”

“선생님께서는 본인 이야기를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말씀하시는군요.”

기가 막힌다는 듯, 성광현은 씁쓸하게 웃었다.

“책 홍보가 제대로 된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음…… 그렇게 해석한다면, 말도 안 되는 행운을 얻었다고 볼 수도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흉기 난동을 일으킨 책이라는 오명을 얻게 되겠지만, 결과적으로 온 국민이 제 책 제목을 알게 될 테니까요.”

“어쩌면 『호밀밭의 파수꾼』과 비슷한 느낌일 수도 있겠군요.”

성광현이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말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존 레논의 살해범인 마크 채프먼이 읽었던 책으로, 더욱 유명세를 얻은 바 있다.

정확히 똑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준후의 책도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었다.

준후의 말대로.

이번 사건은 한국 출판계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사건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성광현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일단 서점으로 돌아가시죠.”

“서점에는 왜…….”

“사인회가 중단되었으니, 남은 시간을 채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리하실 필요 없습니다. 독자분들도 충분히 이해해 주실 겁니다.”

“어차피 저녁 시간도 비워뒀고, 심하게 다친 것도 아니니, 바로 가시죠.”

“하…… 선생님.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준후는 곧바로 차를 타고 서점으로 돌아갔다. 관계자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눈 후, 다시 사인회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일주일 후.

예상대로 준후의 에세이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흉기 난동이라는 자극적인 사건과 더불어, 준후가 살인 미수범을 홀로 제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준후의 용감한 행동에 감탄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안읽꼭사’ 운동까지 벌어졌다.

‘안 읽더라도 꼭 사주자’는 의미의 신조어였다.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인쇄 공장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성광현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규홍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준후에게 규홍은 마치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 준 제비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셈이었다.

이처럼 세상일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