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EN]: Chapter 171

<171>

아이멘 제국.

아이멘 제국은 비공정을 최초로 하늘에 띄우며 동대륙의 패권을 움켜쥐었던 신흥 강국으로, 올해 호라이즌은 바로 그 아이멘 제국에서 개최된다.

리오넬 왕국의 대형 비공정, 골든드래곤이 아이멘 제국의 수도, 릭스톤 상공에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냈다.

“으아! 지겨워 죽는 줄 알았네.”

골든드래곤의 갑판 위에서 앨리스가 활짝 기지개를 켰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장시간 비행에 대한 지루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여기가 아이멘 제국의 수도 릭스톤인가······.”

앨리스 옆에 서 있던 자르얀이 릭스톤의 전경을 눈에 담으며 감탄했다.

세계열강 중에서도 손꼽히는 아이멘 제국의 황도 릭스톤은 최신 건축 기술로 지어진 고층 건물들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다.

그는 노야 부족을 떠나 리오넬 왕국의 수도 바로나에 처음 도착했을 때 느꼈던 문화 충격을 다시금 경험했다.

“릭스톤에 비하면 바로나는 완전 시골 촌구석이네, 촌구석.”

앨리스의 솔직한 중얼거림에 자르얀은 깜짝 놀라 움찔했다.

그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감히 입 밖으로 내뱉을 말은 아니라고 여겼다. 그는 앨리스의 귓가에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앨리스, 왕비님도 계시는데 그런 말씀은 삼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앗, 실수!”

앨리스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뒤를 흘끔거렸다.

레이나는 리오넬 왕국 방향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다행히 그녀는 앨리스의 말을 듣지 못한 듯했다. 앨리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레이나는 주변의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은 왕국에 두고 온 어린 아들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잘 울지도 않고 잘 지내고 있겠지?’

혀 짧은 소리로 “마마, 마마”라고 옹알거리며 아장아장 걸어오는 첫째 왕자 이안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유모가 있으니 나를 찾지도 않으려나?’

레이나는 얼마 전, 정원에서 넘어진 아들이 자신에게 달려오지 않고 유모에게 울면서 달려갔던 장면을 떠올렸다.

다시 생각해도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왕족이나 귀족의 아이들은 친어머니보다 유모와 훨씬 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유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레이나도 아들 이안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평범한 여인이 아니었다.

평범한 왕비조차 아니었다.

에반을 지키는 굳건한 방패이자, 동시에 리오넬 왕국을 수호하는 날카로운 검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직후부터 그녀는 잠시 놓았던 검을 다시 잡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왕국의 비밀 병기인 타이탄의 조종법도 완벽하게 익혀야 했다.

‘라누아는 조금 다르겠지?’

레이나는 둘째 왕비를 떠올렸다.

라누아 역시 8성 강자인 누르갈의 혈통을 이어받아 뛰어난 무예 실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리오넬 왕국의 복잡한 상황을 고려하면 다소 부족한 면이 있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보호하는 역할보다는 보호받는 역할에 더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그녀라면 자신과는 달리 아이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 것이다.

‘딸이라고 했었지?’

망망대해를 항해하던 중, 왕국에서 라누아가 딸을 출산했다는 전보가 도착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레이나는 속으로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리오넬 왕국은 여성의 인권이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그것은 뛰어난 마력 각성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할 만한 능력이 없다면 왕위는 대체로 남성에게 돌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500년이 넘는 리오넬 왕국 역사에서 여왕이 등극한 사례는 단 네 번뿐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솔직히 말해서, 라누아와 진심으로 친하게 지내기 어려운 것이 레이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겉으로 티를 내지 않을 뿐이었다.

사실 어느 나라를 찾아봐도 첫째 왕비와 둘째 왕비가 서로 웃으며 행복하게 지내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설령 그런 모습이 보인다 하더라도 99%는 가식일 것이라고 레이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증오하는 마음은 품지 말아야지.’

레이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지난 세대처럼 왕국 내부에서 서로 싸우며 힘을 소모하는 비극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골든드래곤! 하강합니다!”

승무원의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레이나는 복잡한 생각들을 떨쳐냈다. 아이멘 제국에 착륙하는 순간부터 그녀는 프란에게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검술 외에는 거의 문외한에 가까운 그녀였지만, 프란의 연구 결과물인 스텔라가 얼마나 혁신적이고 대단한 물건인지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제 왕국을 수호하는 검이 될 시간이었다.

***

호라이즌 발표회장.

아르야 왕국의 총리이자 귀족파를 이끄는 리히드 프로스 공작이 그곳에 있었다. 8성 마법사인 그가 지식의 축제인 ‘호라이즌’에 참석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특별히 준비한 논문은 없었다.

리히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세계의 진리를 탐구하는 일에 대한 열정을 오래전에 잃어버렸다.

사실 그는 원래 호라이즌에 참석할 계획이 없었다. 아르야 왕국 내부에서 국왕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에 함부로 자리를 비우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르야 왕국에서 멀리 떨어진 아이멘 제국까지 직접 찾아온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엄청난 논문이 발표될 거라는 소문이 있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호라이즌의 논문 심사 위원회는 대부분 각 마탑의 탑주이거나, 과거에 탑주를 역임했던 저명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는 국가를 초월하여 활동하는 인물도 있다.

심지어 제국의 황제들조차 그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정도였다. 5년 전, 황탑주가 마력 초전도체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을 때조차 외부로 어떤 정보도 새어나가지 않았었다. 그만큼 호라이즌의 논문 심사는 철저한 보안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엄청난 논문이 있다는 소문이 은밀하게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8성 마법사이자 아르야 왕국의 총리인 리히드는 귀빈석에 앉아 주변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청탑주, 녹탑주, 적탑주······ 거대한 마법 탑의 주인들은 대부분 참석해 있었다. 단 한 명, 5년 전에 엄청난 망신을 당했던 황탑주만이 보이지 않았다.

‘하긴, 아무리 낯짝이 두꺼운 사람이라도 호라이즌에 다시 나타나기는 쉽지 않겠지. 게다가 지금은 내전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그는 다리를 꼬고 앉아 사전에 전달받은 발표 일정표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스텔라······.’

호라이즌 첫날, 가장 먼저 발표될 논문의 제목.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호라이즌 측에서 흘러나온 소문의 진원지가 바로 ‘스텔라’라는 뜻이었다.

‘대체 뭐길래 이렇게 소란스러운 거지?’

((아, 아.))

리히드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호라이즌의 진행자가 무대 위로 올라와 목을 가다듬었다.

((올해 호라이즌에 참가해주신 귀빈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올해 호라이즌은······.))

진행자의 지루한 인사말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리히드는 계속해서 스텔라에 대한 궁금증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럼, 드디어 첫 번째 발표자를 모시겠습니다! 5년 전, 호라이즌 메달을 당당히 목에 걸었던 호라이즌 위너! 리오넬 왕국의 공작이자 8성 마법사인 프란 미네르바 님입니다!))

짝짝짝!

요란한 박수 소리와 함께 프란이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

“슬슬 프란이 스텔라에 대해 발표할 시간이 다가오는군요.”

클리앙의 말에 나는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그의 말처럼 지금 아이멘 제국에서는 프란이 발표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현재 나와 클리앙이 함께 있는 곳은 아이멘 제국의 대사관이었다. 다소 늦은 시간에 방문한 탓에 주변은 어두컴컴했다.

덜컹.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아이멘 제국 대사관의 책임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숱이 적은 머리카락.

넉넉한 인품을 풍기는 푸근한 체형.

겉모습만 보면 다소 어수룩해 보일 수도 있는 인물이었다. 나는 그와 이런저런 일로 꽤 자주 마주쳤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폐하.”

그는 능숙한 리오넬 왕국어로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의 외가 쪽이 리오넬 왕국 출신의 이민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손을 가볍게 흔들며 입을 열었다.

“아니, 괜찮아. 이렇게 늦은 시간에 갑자기 찾아온 내가 오히려 미안하지.”

그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내 속마음을 눈치챘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렇게 늦은 시간에······.”

호라이즌에서 발표될 스텔라는 하급 마정석 정도의 출력을 낼 수 있지만, 그 잠재력만으로도 엄청난 파급력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혼자서만 독점하면 좋겠지만, 너무나도 매혹적인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주변에서 침을 질질 흘리는 하이에나들이 득실거리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적절한 아군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스텔라 기술을 완전히 공유할 수는 없겠지만, 맛보기 정도는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결정한 파트너가 바로 아이멘 제국이었다.

일단 아이멘 제국은 리오넬 왕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호라이즌 개최지이기 때문에 현장에 있는 리오넬 왕국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클리앙 백작이 설명해줄 겁니다.”

내 말과 동시에 클리앙이 준비해온 두꺼운 서류를 대사에게 건넸다. 나는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 차를 마시며, 궁금한 표정으로 클리앙과 아이멘 제국 대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겉으로는 어수룩해 보이지만, 그는 상황 판단 능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클리앙의 설명을 결코 흘려듣지 않을 것이다.

잠시 후, 그에게서 아이멘 제국 본국으로 긴급 전보가 발송될 것이다.

***

“어휴,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오늘 아침에만 왕도로 잠입하려던 첩자들이 두 자릿수를 훌쩍 넘었다고 합니다.”

알폰소가 과장된 몸짓으로 너스레를 떨며 내게 신문을 건넸다.

『[속보] 호라이즌에서 발표된 충격적인 신기술, 스텔라』

『[속보] 2회 연속 호라이즌 위너 등극이 확실시되는 프란 미네르바』

『[속보] 세계 마정석 시장에 거대한 태풍을 몰고 올 스텔라』

『마력 초전도체, 그리고 스텔라.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는 마공학』

첩자들은 초조해하며 안달했다.

스텔라가 그만큼 혁신적인 기술이라는 증거였다.

겨우 하급 마정석 효율을 내는 수준의 스텔라를 발표했을 뿐인데 이 정도의 반응이라니. 실제로 스텔라가 상급 마정석 효율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시 한번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보안을 유지할 자신은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은 통제 불가능한 힘 때문에 비밀이 새어나가는 상황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도서관]과 같은 능력 말이다.

깨어났을 가능성이 높은 에트림의 존재가 가장 신경 쓰였다.

‘발표를 미뤘어야 했을까?’

다시 한번 심사숙고했지만, 결론은 같았다.

지금 발표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믈 제국의 내란이 완전히 종식된다고 해도, 놈들이 서북부를 탈환한 리오넬 왕국에 감히 보복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만큼 강력한 전력을 갖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병력 수가 부족한 만큼, 성능이 뛰어난 무기들을 확보해야 한다.

‘라크K만으로는 부족해.’

세계 강대국들로부터 스텔라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한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프란과 함께 아이멘 제국으로 떠난 레이나를 떠올렸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최대한 안전 장치를 마련해두었다.

내가 만났던 아이멘 제국 대사를 통해 아이라와 은밀히 접촉하라는 언질을 받은 아이멘 제국 측은 그녀와 만나 비밀 협약을 체결했다.

자세히 파고들면 수십 장에 달하는 복잡한 계약서지만, 핵심 내용은 간단하다.

우리는 아이멘 제국 측에 스텔라 기술을 가장 먼저, 그리고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한다.

대신에 그들은 호라이즌에 참석한 리오넬 왕국의 인재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추후 스텔라 기술로 인해 외교적인 분쟁이 발생할 경우 리오넬 왕국을 은근히 옹호해준다.

‘다나르시여, 부디 그들의 무사 귀환을 보살펴 주소서······.’

제가 이런 부탁, 어지간하면 안 하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부디 이번에만 힘을 조금만 써 주십시오.

***

아이멘 제국에 위치한 아르얀 대사관.

그곳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그는 바로 리히드 프로스, 아르야 왕국의 총리였다.

마차에 올라탄 그는 시종일관 굳은 표정을 유지하며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

-리히드 공작님. 국왕 폐하와 공작님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사실은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잠시 갈등을 멈추고 눈앞에 닥친 위기부터 극복해나가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리히드는 머릿속에서 아이멘 제국 대사가 했던 말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눈앞에 닥친 위기라······.’

리히드는 프란이 스텔라를 발표했을 당시 느꼈던 충격적인 감정을 다시 떠올렸다.

아르야 왕국이 내부 갈등으로 치열하게 다투는 동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집어삼킬 수 있을 것 같았던 리오넬 왕국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을 거듭했다.

서북부 탈환.

마력 초전도체 라크K 개발.

그리고 이제 혁신적인 스텔라 기술까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서로 치고받으며 제 살을 깎아 먹고 있는 리오넬 왕국을 비웃었었다.

하지만 지금 아르야 왕국의 상황이 바로 그때의 리오넬 왕국과 똑같았다.

이대로 상황이 계속된다면, 리오넬 왕국이 아르야 왕국을 집어삼키는 것은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

-폐하께서 공작님과 의논할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는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국왕이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국왕의 손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리히드는 국왕의 손과 자신의 오른손을 번갈아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