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랩스타-96화(96/309)
< Verse 15. 흐름 >
***
상현은 어렵게 시간을 내서 하연과 함께 서울로 향했다. 일전에 약속한 인디 키드의 앨범 피쳐링 작업 때문이었다. 그들은 토요일 오전에 고속버스를 탔다.
‘나중에는 송정역에서 용산까지 한 시간 반이면 되는데…….’
버스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상현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서울에 한 번 가려면 장장 3시간 30분을 달려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연은 왠지 묘하게 신나보였다.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보여?”
“응? 아니 그냥, 모처럼 한적하잖아.”
하연의 말처럼 오전이라 그런지 고속버스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덕분에 둘은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888 크루는 소통이 잘되는 팀이었지만, 함께 모여 있다 보면 너무 흥을 냈기에 개인적인 이야기는 생각처럼 많이 하지 않았다.
“대학은 어떻게 할 거야? 저번에 예대 쓴다고 하지 않았어?”
“고민 중이야. 아버지는 음악을 해도 대학교는 가라고 하는데,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 힙합을 하는데 실용음악 학과에서 배울게 있을까?”
“작곡 쪽은 배울만한 게 있지 않을까?”
“근데 거기서 배우는 건 오로지 시퀀싱이야. 샘플링 해서 과제 제출하면 졸업도 안 시켜줄 걸?”
“그 정도야?”
“몇몇 작곡가들에게 샘플링은 표절과 다름이 없으니까.”
시퀀싱(sequencing)은 소리를 직접 찍는 행위를 말했다. 음을 입력하고 악보를 적고 코드를 만들어내는, 흔히 대중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작곡을 시퀀싱이라고 불렀다.
그에 반해 샘플링(Sampling)은 재해석의 범주에 속하는 일이었다. 보통 올드 스쿨 재즈나, 50-80년대의 연주 중 일부를 추출하고 재조합해서 비트로 만드는 행위였다. 어떤 샘플을 추출하는가, 추출한 샘플을 어떤 사운드와 결합 시키는가, 얼마나 독창성이 있는가 등등이 샘플링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샘플링의 재미있는 점은 지구상의 어떤 소리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영화 8마일의 마지막 랩 배틀 비트로 유명한 맙딥(Mobb Deep)의 Shook one Part 2는, 가스레인지를 켤 때 불꽃이 튀며 나는 ‘트트트’ 소리를 샘플링한 비트였다.
물론 힙합 비트를 작곡할 때도 시퀀싱이 사용된다. 올 시퀀싱으로 작곡된 비트도 있고, 시퀀싱과 샘플링을 적절히 조화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힙합이 샘플링에 기반을 둔 장르라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태생부터 DJ에서 출발한 힙합은, MPC머신 [음악 제작에 사용되는 장비] 의 발명으로 인해 샘플링 문화가 확고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샘플링이 어느 순간부터 표절이라고 욕을 먹기 시작한 이유는 통칭 ‘통 샘플링’을 이용하는 뮤지션들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샘플링의 실력은 디깅(Digging : 적절한 샘플을 추출하기 위해서 수많은 곡을 찾아 헤매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아무도 모르는 60년대 아일랜드 무명 재즈 음악가의 연주를 샘플링해서 빌보드 1위로 만드는 재창조와 재해석의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통 샘플링은 이러한 디깅의 과정이 삭제되어있는, 흔히 말하는 날림 작법이었다. 통상의 샘플링이 5분짜리의 연주곡에서 단 몇 초를 따와서 루핑시키는데 반해서, 통 샘플링은 연주곡 전체를 따온다. 그리고 단지 드럼 라인만 삽입하는 것이었다. 심한 경우에는 드럼 라인까지 이미 만들어진 힙합 비트에서 따오기도 했다.
이런 경우에는 샘플클리어(Sample Clear)라고 불리는 ‘원작자에 대한 저작권료 지불’을 하는 것이 맞지만, 초창기 많은 힙합 뮤지션들이 ‘힙합은 원래 이래’라는 말을 들먹이며 표절과 샘플링의 경계를 애매하게 만들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렇게 열정도, 수고도 들이지 않은 통 샘플링 비트가 성공하는 경우가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박진영이 작사, 작곡한 GOD의 ‘어머님께’라는 곡이 투팍(2pac)의 라이프 고즈 온(Life Goes On)의 표절 시비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통상적인 샘플링이다’와 ‘표절이다’의 논란 끝에 결국 어머님께는 투팍의 곡이 되었다.
이러한 샘플링에 관한 논란은 힙합음악이 주류에 올라서고도 끊이지 않았으며, 2010년대에 들어서 힙합 작곡가들이 샘플클리어를 중요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사그라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정통 작곡가들은 샘플링을 작법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니 2005년의 예대 교수님들은 오죽하겠는가.
하연이 고민하는 이유였다.
“대학에 힙합 학과가 생기면 좋겠다.”
“곧 생길 거야.”
“뭐? 말도 안 돼. 그럼 대학교에서 교수님들이 랩을 가르치는 거야? 그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요요 [yo-yo: 힙합 문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제스처나 춤 동작]?”
“그건 아니고 외래 교수를 초청하겠지?”
상현의 말에 하연이 말도 안 된다며 웃었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어서 상현도 그냥 웃었다.
한참을 웃던 하연이 문득 말했다.
“서울로 진학하면 크루 활동을 못하는 게 가장 싫어.”
“왜 못해? 서울이랑 광주랑 멀어봤자 얼마나 멀다고…….”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것 알잖아.”
사실 하연의 말이 맞았다. 서울로 진학한다고 해도 곡을 만들지 못하고, 같이 공연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물리는 느낌을 받긴 힘들 것이었다.
‘민지 누나도 인혁이 형도, 환이 형도 곧 4학년이 되네.’
한참을 고민하던 상현은 결국 고개를 휘휘 저으며 상념을 털어냈다. 이런 일은 고민해도 어쩔 수 없다. 그때가 되면 저절로 겪게 될 일이다.
Forever 888.
힙합엘이와의 인터뷰 때 했던 말처럼, 그들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음악을 만드는 것뿐이었다. 동시대를 공유했던 이들이 영원토록 기억할 음악을.
8시에 광주에서 출발한 버스가 서울에 도착하는 시간은 11시 30분이었고, 점심을 먹고 인디 키드의 작업실에 도착하니 한 시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왔어?”
작업실에 도착하니 인디 키드의 드러머 김웅각과 보컬 최태일이 그들을 반겼다.
“안녕하세요.”
“오느라 힘들었지? 밥은 먹었어?”
김웅각과 최태일이 기꺼운 마음으로 상현과 하연을 맞이했다.
한국은 음악 씬이 좁고, 언더그라운드 씬은 더욱 좁다. 때문에 현재 888 크루가 얼마나 핫한 지는 활동 반경이 다른 인디 키드도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그냥 애들인데 말이야.’
꾸벅 인사하는 상현과 하연을 살피던 김웅각은 그제 있었던 술자리를 떠올렸다. 함께 술을 먹었던 밴드 동생들의 말이 생각났다.
‘형 진짜 888이랑 콜라보해요? 저희도 연락 한 번 해봤는데, 걔네 자기 앨범 준비한다고 콜라보 안 해주던데요?’
‘그래? 우린 금방 오케이 했어.’
‘얼마 주기로 했어요? 천만 원은 불러야 오려나?’
‘천만 원은 무슨. 그냥 알아서 챙겨주라던데? 딱히 구체적인 액수가 오가지는 않았어.’
‘와, 진짜요? 형 걔네랑 친해요? 쇼 비즈니스 때문에 사이 안 좋은 줄 알았는데.’
‘사이가 안 좋을 이유가 있나. 888 크루 괜찮은 애들이야. 선배에 대해 예의도 있고 문화에 대한 존중도 있는 애들이야.’
‘와, 그럼 쇼 비즈니스에서 한 인터뷰는 진짜 헛소리였나 보네요. 형 이번 앨범 완전 대박 나는 거 아니에요?’
김웅각은 동생들의 선망어린 눈빛에 괜히 어깨가 으쓱했었다. 하나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면, 888 크루가 광주 타이거즈 축하공연에서 빵 뜨기 이전에 잡은 콜라보 약속이라는 것이지만.
‘몸값도 많이 올랐는데 그런 쪽 이야기는 전혀 안 하네.’
물론 알아서 챙겨줄 생각이었지만 인디 키드는 약속을 지켜준 상현과 하연이 고마웠다.
“이 친구는 우연우라고 오늘 너희 디렉 봐줄 친구야. 우리 프로듀서가 랩 디렉팅(Directing) 경험이 없어서 불렀는데 서로 알고 있다며?”
스타즈 레코드의 프로듀서인 우연우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상현과 하연도 오랜만에 보는 우연우와 인사를 나눴다. 잠시 잡담이 오가다가 다시 곡 이야기로 돌아왔다.
“가이드 들어보니까 손 볼 곳도 없겠더라. 엄청 잘했던데? 그냥 디렉 합만 맞추고 바로 녹음실로 가자.”
“형, 말대로 할게요.”
“이거 가이드 분할은 어디어디 한 거야? 내가 듣기에는 여섯 곳인 거 같던데?”
“네? 아니에요. 세 번 밖에 안 했어요.”
상현의 말을 들은 우연우가 고개를 갸웃하며 출력해온 가사를 내밀었다.
“세 번밖에 안 한다고? 땜핑이 좋아서 그런가? 어디어디 했는데?”
“‘널 나란 틀 안에’, 여기서 한 번 했고, ‘좋았어.’ 여기서 한 번했어요. 그리고 마지막은 ‘난 다시 원위치로.’ 여기에요.”
상현이 가사를 짚으며 설명했다. 우연우는 상현이 짚어주는 부분을 보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부분을 분할했단 말이야? 왜?”
분할이란 분할 녹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분할 녹음이란 벌스가 길게 이어져서 숨이 달리는 부분을 잘라 녹음하는 레코딩 방법이었다.
분할 녹음은 래퍼들마다 그 철학이 달랐다. 모든 마디를 분할해 여유로우면서도 확고한 바이브를 형성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고, 로우함을 만들기 위해 거의 분할을 하지 않는 래퍼도 있었다.
그러나 우연우가 의아해하는 것은 상현이 둘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상현이 분할한 곳들은 숨이 차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박자를 여유 있게 가지며 녹음하는 부분도 아니었다.
“숨 차는 부분이 아니잖아?”
“그렇죠.”
“근데 왜?”
“이 세 부분이 감정이 달라지는 부분이잖아요. 첫 부분은 과거의 소망이고, 두 번째 부분은 현재의 아쉬움이고, 마지막 부분은 그래서 내린 결론이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이제 포기해’ 여기도 분할해야 하지 않아? 결론을 내린 부분이잖아요.”
“아니에요. 그 부분은 그냥 현재의 아쉬움을 과하게 표현한 부분이에요. 그러니까 본심이 아닌 거짓말인 셈이죠.”
“거짓말이라고?”
“기표랑 기의가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기표(signifier)와 기의(signified)는 언어학에서 의미를 전달하는 두 가지 요소].”
우연우는 상현이 가진 랩의 비밀을 엿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디렉을 보았지만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래퍼는 처음이었다.
“항상 그렇게 감정을 중시해? 스웨거 곡을 할 때도?”
“당연하죠. 왜요? 이상해요?”
“아니, 이상하다기보다는…….”
“랩은 아주 구체적이고 뚜렷한 메시지와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매체잖아요. 전 항상 이렇게 해왔어요.”
프로 래퍼들이 겪는 어려움은 대체로 비슷하다. 랩을 오래 할수록 사용하는 언어의 가짓수와 랩의 느낌이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와 마주하게 된 래퍼들은 새로운 느낌을 찾다가 자신만의 매력을 망가트리거나, 지나치게 원래의 것을 고집하다가 도태되곤 했다.
롱런하는 래퍼들은 모두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한 이들이었다.
‘언젠간 상현이에게도 이러한 문제가 찾아올까?’
우연우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랩을 대하는 상현의 태도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상현은 랩 스킬에 치중하지 않는다. 단지 하고 싶은 말을 가장 잘 표현하고자 노력할 뿐이었다.
“오늘 너 덕분에 정말 좋은 거 배웠다. 분할이고 더블링이고 네 방식대로 해. 내가 터치할 부분이 아닌 것 같아. 나는 그냥 사운드 디렉만 볼게.”
“알겠습니다.”
“이제 가볼까? 가사는 다 외웠지?”
“당연하죠.”
“하연이는 상현이 가이드 끝나고 하는 걸로 하자.”
우연우가 엔지니어링 포지션을 잡자 상현이 부스로 들어갔다. 곧 레코딩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 Verse 15. 흐름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