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선기환담 – 243화
[건방지긴…!!]
하지만 지금 그가 보여주는 신력은 결코 건방진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인과율로 직조된 푸른 태양은 순식간에 천지의 정기를 끌어모으는 강력한 신통이었다.
아마 이 자리가 무와 유의 틈바구니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시전자의 기량이 워낙 출중해서 그럴 수도 있었다.
겨우 이터널 따위가 어찌 저리 완숙한 기량을 부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괘씸했다.
[감히 내 앞에서!]
고영의 머리들이 입을 크게 벌리며 천지의 정기를 응축하기 시작했다.
아홉 개의 머리가 모아들이는 기운은 폭풍우 속에서 울리는 북소리처럼 우레와 같은 굉음을 냈고, 사방으로 소용돌이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삼근은 눈을 가늘게 뜨며 한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쿠우우웅.
하늘을 비추던 푸른 태양이 삼근의 손안에 쥐어졌다.
콰르르르릉!! 사방으로 맹렬하게 번개가 터져 나왔다.
“와라.” 삼근이 나지막이 읊조렸고, 기다렸다는 듯이 담화가 달려들어 위주호연갑을 변환시켰다.
촤라라라락!!
수십 가닥의 담화의 사슬이 땅속에서 솟아올라 고영의 목을 노렸다.
[하찮은 것들.]
고영은 사슬을 쳐다보지도 않고 콧김을 불어 날려 버렸다.
그 콧김은 어찌나 강력한지 담화의 사슬은 맥없이 튕겨져 나갔다.
조롱으로 가득했던 고영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자신의 수염에 묶여 있던 백요의 여인이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
고개를 돌려보니 짙은 살기를 뿜어내는 태양의 주인이 여인을 안고 있었다.
[나를 앞에 두고 여자를 신경 쓰다니?]
신선도 되지 못한 놈이 무슨 만용인가!
수련자조차 자신을 당해내지 못할 텐데, 하계의 이터널 따위가 감히 자신을 이리 대접하다니!
[죽어라!!]
곧바로 고영의 입에서 거대한 광선이 뿜어져 나왔고, 삼근은 손을 내렸다.
푸른 태양이 고영의 신력과 충돌하는 순간.
뾰옹.
콰아아아앙!!
“크억!!”
콰가가가가각!!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반발력과 후폭풍이 몰아쳤다.
고영과 삼근의 신력이 눈이 멀 정도로 번쩍였고, 땅과 하늘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이게 무슨…!]
하지만 고영이 직접 마주한 것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태양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선과 충돌한 태양은 꿰뚫리지도, 밀려나지도 않고 오히려 자신의 신력을 흡수하며 덩치를 불려나가고 있었다. 흡사 상대의 신력에는 천지의 정기를 흡수하는 효과가 있는 듯했다.
겨우 이터널 따위가 만들어낼 수 있는 신력이 아니었다.
‘최소한 등선(登仙)은 된다!’
상계의 중간 단계인 등선 정도는 되어야 가질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자신이 가진 기량은 등선보다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쿠게게게게겡!!
오백 장에 달했던 크기는 천 장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태양을 휘감은 번개는 살아있는 듯 맹독을 뿜어내며 함부로 접근하기 힘들게 뇌기(雷氣)를 마구잡이로 흩뿌리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광경에 고영은 전력을 다해야 할지 말지 갈등하고 있었다.
‘신선도 아닌 놈에게….’
자신의 전력을 드러내는 것은 그야말로 수치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네놈의 기량은 상계의 수련자들과 비견될 만하구나!]
순식간에 고영의 기세가 변했다.
오만하고 자만하던 태도는 사라지고,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콰드득 콰드득!!
고영의 머리들이 서로에게 이빨을 드러내며 잡아먹기 시작했다.
기이한 현상에 삼근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각각의 머리에는 자아가 깃들어 있을 텐데, 갑자기 서로를 잡아먹고 있으니 경계심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삼근은 즉시 수인(手印)을 맺었다.
콜록!
하지만 입가에 흐르는 피와 떨리는 손이 그의 상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쯧.”
자신의 현재 경지를 뛰어넘는 신력을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무와 유의 틈바구니라는 특수한 환경 덕분이었다.
이곳은 천지의 정기가 고밀도로 존재하기에 자신의 본래 신력, 즉 대력(大力)이 없어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심계(心界)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미 자신의 경지를 뛰어넘는 신력을 쏟아내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억지로 담화의 대력까지 빌려 쓰고 있었으니, 당연히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다.
‘이걸 질질 끌면 필패다.’
애초에 고영은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몰라도, 가만히 놔둘 이유는 없었다.
쿠구게게게겡!!
커헉!
삼근은 더 이상 고통을 참지 못하고 피를 토해냈다.
하지만 동시에.
익숙한 수인을 맺으며 상황을 지켜보던 당천이 고개를 쳐들었다.
“설마….”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안 돼!! 어떻게 균천검진(鈞天劍陣)을 쓸 수 있는 거지!”
당천의 경악에 찬 외침과 함께.
수십 자루의 거대한 검이 하늘에서부터 무와 유의 틈바구니를 꿰뚫었다.
거대한 검은 꽃과 흡사한 아름다운 외형을 지니고 있었지만, 칼날에 서린 살벌한 기운은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었다.
푸욱!!
[꺄아아악!!]
순식간에 쏟아진 스무 자루의 거대한 검에 고영의 전신이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머리를 잡아먹으며 그 짓을 반복해 단 하나의 머리만 남았다.
그 광경에 삼근은 재빨리 수인을 바꿔 거대한 검을 푸른 꽃잎으로 변환시켜 괴물의 몸을 찢고 베어 나갔다.
[크크아아악!!]
고영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살점과 피를 흩뿌렸다.
동시에.
괴물의 눈앞에 있는 푸른 태양.
태천오양신공(太天五陽神功)의 태천외양(太天外陽)이 괴물의 눈앞에 있었다.
“그냥 죽어.”
콰아아아앙!!
그야말로 엄청난 폭발이었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눈이 멀 정도로 눈부신 푸른 빛은 너무나 강렬했고, 태양의 열기는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뜨거웠지만, 묘하게도 고요했다.
‘태천오양신공….’
삼근의 신력을 알아본 봉은 안타까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태양.
폭발이 끝난 후, 사방으로 푸른 기운이 흩날리며 칠흑같이 어두운 무와 유의 틈바구니를 온통 푸르게 물들였다.
게다가 그게 전부였을까.
엄청난 폭발 탓에 원래의 지형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라졌고, 거대한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하계의 수련자가 만들어낸 신력이라고는 결코 부를 수 없었다.
오행겁화(五行劫火)의 고통을 견디며 대체 무슨 수련을 했기에 이런 힘을 낼 수 있는 것일까.
봉은 삼근의 힘을 보며 ми묘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예. 하지만….”
삼근은 침착하게 입가의 피를 닦아냈지만, 봉은 눈을 가늘게 떴다.
‘상태가 좋지 않군.’
진수명화(眞水命火)의 경지에 도달하자마자 곧바로 전투에 돌입했다.
경지조차 제대로 안정시키지 못했는데, 저런 엄청난 신력을 쏟아냈으니 몸이 성할 리가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즉시 안정을 취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쉴 틈도 없겠군.”
삼근의 신력은 정말 놀라웠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거친 모래 먼지가 걷히자, 그 안에서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
“고영….”
“저 괴물은 뭡니까?”
“저 괴물은 고영이라고 하는 흉수(凶獸)입니다. 원래는 대라계(大羅界)에서 추방당해 타락한 신수(神獸)였지만, 어쨌든 지금은 무와 유의 틈바구니에 갇힌 괴물일 뿐입니다. 아마 근본이 정상적이지 않아서 그런지 죽여도 죽지 않는 괴물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머리를 잡아먹는 것이죠.”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자신의 머리를 잡아먹는 이유는 아마 힘을 하나로 집중시키기 위해서일 겁니다.”
죽여도 죽지 않는다.
머리를 잘라도 다시 자라나고, 꼬리를 잘라도 재생된다.
몸뚱이도 마찬가지다.
“고영의 진정한 모습은 머리가 아홉 개 달린 모습입니다.
그래서 힘이 항상 분산되어 있죠.
하지만 머리를 삼키면 분산된 힘이 하나로 집중되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강화된 삼근조차 그 힘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와서 나를 진지하게 만들었으니, 쉽게 죽게 놔두지 않겠다. 봉액 너도 마찬가지다!!]
휘이이잉!!
바람이 거세게 불고, 모래 먼지가 사라지며 고영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전의 거대한 모습과는 달리 변신한 상태였다.
박쥐와 같은 날개를 지니고, 뱀과 같은 노란 눈을 가진 남자.
저것이 고영일 것이다.
“천 년 동안 모은 대력(大力)을 써서 너희들을 죽여주마. 그래야 내가 즐거울 테니 부지런히 일해라. 하하하!!”
삼근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은 신력이었지만, 고영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듯했다.
게다가 죽지도 않는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고영은 분할의 법칙을 터득한 괴물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상처든 쉽게 재생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럼 어떻게 해야 쓰러뜨릴 수 있습니까?”
“그렇기에 대라천(大羅天)의 신선들조차 그저 무와 유의 틈바구니에 가둬두기만 했을 뿐입니다. 그가 터득한 기법은 그의 법칙, 육체와 함께 하나로 융합되어 있어 매우 까다로운 괴물이죠.”
봉의 말은 죽일 방법이 없다는 말과 같았다.
“그럼 방법이 없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위압적인 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천 년의 대력(大力)을 썼다고 했었나?”
“그렇다. 너희 제자와 네놈은 이제 나를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봉은 걷잡을 수 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그 천 년은 헛수고가 될 것 같군!”
“…뭐?”
바로 그때였다.
키이이잉!!
갑자기 땅에서 빛이 솟아오르며 공중에는 신성한 문양들이 떠다니기 시작했다.
멈칫했던 고영은 신성한 문양과 진형의 형태를 보고는 악귀와 같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진형의 형태를 모를 리가 없었다.
부적과 같은 기묘한 형태.
공간이동진(空間移動陣)이었다.
“멈춰!!”
“미안하지만 멈추는 법은 배우지 못해서 말이야.”
훕 우웅!!
공간이동진의 빛이 크게 요동치며 삼근과 봉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고영은 축지법을 써서 봉의 멱살을 잡았지만….
훕 우웅.
그가 잡은 것은 텅 빈 허공뿐이었다.
이미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카득.
고영은 이를 갈았고, 그의 얼굴에는 핏줄이 솟아올랐다.
살벌한 살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봉액, 이 망할 자식!!”
콰아아앙!!
고영의 기운에 땅이 갈라지고 모래 먼지가 폭발했다.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꽉 쥔 고영은 문득 한 사람을 떠올렸다.
자신에게 봉액의 존재를 알려준 신선.
당천.
“어딨느냐?”
하지만 이상하게도.
당천의 기운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빌어먹을 자식들!!”
고영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한참 동안 날뛰었다.